케이트 블란쳇의 'TAR 타르'는 예술(ART)에 관한 영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그린 영화.
위대한 음악가의 전기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타르는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려낸 밀도 높은 심리 드라마이다. 영어 제목인 T.A.R를 다시 조합해서 읽으면 ART과 RAT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타르의 예술에 관한 영화이자 시궁쥐같이 비열한 마음으로 사는 인생에 대한 영화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지적이면서 섬세하고 우아한 연기는 이 영화를 꼭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만든다.
줄거리
영화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인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의 인생 정점에서 시작한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타르는 EGOT라 불리는 에미상, 그래미, 오스카, 토니상까지 미국의 주요 엔터테인먼트 시상식을 휩쓴 인물이다.
보스턴 심포니와 뉴욕 필하모닉을 거쳐 7년간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를 맡고 있고, 현재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녹음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이 쓴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영화 타르는 이 놀라운 경력과 업적을 가지고 정점에 서 있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사건과 그 속에 감춰진 욕망과 그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보였던 타르의 진짜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심리 드라마이기도 하다.
리뷰
영화 타르는 무대를 장악하는 멋진 마에스트로였으나,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사적 욕망을 공적 권력을 이용해 은밀히 채우려 했던 비열한 본성을 지닌 한 인간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TAR 타르'는 자기 일에서 정점을 찍은 한 인물에서 시작해 바닥까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재능으로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된 한 인간이 서서히 욕망의 괴물로 변해 추락하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음악은 움직임이야"
음악이 움직이는 것처럼, 영화도 움직이고, 인생도 움직인다. 정점에 이른 지휘자 타르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타르의 멋짐에 매료되기도 하고 권력에 기대어 이상한 행동을 할 때는 의아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든다. 또 자신의 비열한 욕망으로 몰락해갈 즈음엔 권력의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큰 권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타르의 경력이 최정상에 오른 만큼 각종 구설에 오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강의에서 한 학생을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는 장면, 그루밍 성폭력 문제, 자신의 영원한 지지자일 것 같은 어시스턴트 프란체스카와의 폭로에 시달린다. 큰 힘에는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 타르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TAR 타르' 제목에 관한 이야기
영화 제목이 그냥 '타르'가 아니고 'TAR 타르'이다. 일반적으로 이럴 경우 영어를 빼고 '타르'라고 쓸 텐데, 굳이 'TAR 타르'라고 쓴 이유는 뭘까. 바로 한글로 타르라고만 쓰면 원제인 TAR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T' 'A' 'R'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ART(예술)에 관한 영화이자, RAT(쥐새끼)같이 비열한 권력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타르가 비난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등을 돌린 사람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었고, 다음은 대중이었다.
대중은 타르에 대한 문화적 보이콧 즉 캔슬 컬처한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논쟁이 될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하거나 과거의 잘못된 행동이 드러났을 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대중이 팔로우를 취소하고 비판이 쇄도하여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현상이나 운동이다. 타르의 권력을 이용한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캔슬 컬처되어 추락하게 된다.
케이트 블란쳇
영화는 현시대 최정상 음악가인 타르의 토크쇼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음악가로서의 놀라운 업적을 진짜 토크쇼처럼 길게 설명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TAR 타르'의 주인공이 진짜 실존 인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인물은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다. 예술적 재능으로는 위대했지만, 자신의 비열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추락했던 인물을 실존 인물처럼 연기한 배우는 케이트 블란쳇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다시 언급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이미 <블루 재스민> <캐롤> <나이트메어 앨리> <토르:라그나로크>에서 압도적인 연기와 다채로운 변신을 보여 줬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앞선 이 모든 캐릭터가 녹아있다. 'TAR 타르'는 케이트 블란쳇에 의한 영화이자 케이트 블란쳇을 위한 영화다.
감독은 케이트 블란쳇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고, 그녀가 이 역을 맡지 않는다면 영화화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천부적인 연기 재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배우로서 케이트 블란쳇은 타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 지휘자 일리야 무신의 마스터 클래스를 수료했고 지휘자 안토니오 브리코의 다큐멘터리를 반복해서 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고 밝힌 바 있다.
'TAR 타르'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직접 지휘도 하고 피아노 연주까지 수준급으로 해내는 장면에서 거장의 느낌과 동시에 관능적인 면모도 놓치지 않고 풍부한 감정선도 표현하는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토드 필드 감독
그렇다고 영화 'TAR 타르'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다. 지휘자 경력의 정점에 선 타르를 서서히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영화의 스토리, 촬영, 편집, 음악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우아하지만 격렬하고 서서히 침통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는 2007년 <리틀 칠드런> 이후 15년 만에 돌아온 토드 필드 감독이 연출했다.
이전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관계,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 강한 권력을 쥔 인간의 불안과 사악한 충동, 야심이라는 인간 감정에 대한 세밀한 탐구와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표현 방식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감독은 남성 권력이 공고한 클래식 음악계에 EGOT 그랜드 슬래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초 수석 지휘자라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가상 여성 지휘자를 만들어 냈다. 이후 영화는 포스트 미투 세대인 청년들이 주인공 타르에 의해 음악계에서 내쫓겨 자살한 크리스타 테일러를 애도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장면으로 타르를 추락시키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든다. 감독은 왜 클래식 음악계에서 극히 드문 최정상에 오른 여성 지휘자를 만들어 내고, 그 이후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 자리에 레즈비언 여성 지휘자를 제시했을까?
타르가 이룬 예술적 업적과 달리 예술가로서의 타르라는 사람은 빈 껍데기 같은 영혼과 바닥을 보이는 양심과 거의 전무한 자기 성찰의 소유자이다. 그로 인해 추락을 맞은 타르는 자신이 평생을 걸쳐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공고한 권위와 천재성의 세계도 모두 그에게 진짜로 허락된 자리가 아니라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술적 성취와 예술가의 인격은 비례하지 않는다. 타르는 허구에 가까운 이상적인 페르소나를 마치 자신의 본질로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영화는 타르처럼 우리에게 권력이 자신인 줄 알고 이 허상만 믿고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닌지 되어보게 한다.
이를 깨달은 타르의 모습은 결말 장면에 담겨있다. 타르가 말러의 5번 교향곡 지휘를 잃는 대신 동남아의 사창가에서 반원형으로 꿇어앉아 지명을 기다리는 5번 소녀를 발견하고 역함을 느끼는 장면은 많은 걸 깨닫게 한다.
말러 교향곡 5번
영화는 타르와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타르의 소재이자 바탕을 이룬다.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5번을 작곡했을 때 작곡가로서 최전성기에 있었다. 그때 19살 어린 알마 쉰들러를 만나 결혼도 한다. 그 이후 말러의 삶은 급격히 망가진다. 알마가 떠나고 자신은 건강을 잃고 딸이 죽었다.
말러가 교향곡 5번을 작곡한지 10년 후에 사망한다. 경력의 정점에 말러 교향곡 5번을 지휘하다가 나이 어린 여성과 관계를 맺고 이후 바닥으로 추락하고 딸을 잃는 모습은 타르의 삶과 비슷하다.
TAR 타르 OST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주인공인 만큼 음악 또한 클래식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말러 교향곡과 엘가의 콘체르토가 흐른다. 이 음악은 인물의 심리에 따라 때론 웅장하거나 때론 공포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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