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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다음 소희' 개미지옥에 빠진 청소년 노동인권 영화 실화 영화 줄거리 리뷰

by 씨네서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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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 노동자의 삶을 훌륭한 영상으로 만들어낸 켄 로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화 함께 보기를 권하는 영화 <다음 소희>. 영화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다음 소희 1부 줄거리

춤추기를 좋아하는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혼자 춤 연습을 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초반에 아무도 봐주지 않는 어두운 연습실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연습하는 소희의 모습에서, 식당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단짝 친구에게 시비를 거는 남자들과 싸우는 소희의 모습에서, 영화는 소희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 여고생이었는지 보여준다.

소희 역의 김시은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희는 졸업을 앞두고 '실습 교육'이라는 교과과정으로 산업 현장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취업을 한다는 설렘과 춤을 출 수 없다는 아쉬움을 안고 담임이 대기업이라고 추천한 곳으로 실습생으로 가게 된다.

담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실습 나간 곳은 이동통신사의 하청의 하청업체였다. 소희가 기대했던 사무직이긴 하지만 인터넷 해지 요청을 하는 가입자가 해지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콜센터의 '해지 방어팀'의 직원이었다.

영혼 파괴자

이 업무는 해지를 위해 전화를 건 사람들을 상대로 해지가 아니라 다른 상품을 제안하거나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해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든 해지를 막으려는 대기업이 유발한 고객의 분노를 하청의 하청인 콜센터 직원이 막아내게 하는 시스템이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힘든 해지 과정에 화가 나 있거나 전화상 거친 말과 욕을 하거나 성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힘든 업무였다. 고등학생인 소희는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은 고등학생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었다. 

실화 영화

이 과정을 영화는 세심하고 치밀한 리얼리즘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화되었다. 이동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 나갔던 여고생의 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2017년 전주 콜센터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소희는 팀장이 죽고 힘들게 사는 친구들을 보고 나서는 뭔가 홀린 것처럼 콜센터 일에 전념한다. 소희도 서서히 시스템이 만든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일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람의 영혼에 상처를 내는 일로 약한 인간을 죽게 만들거나 상처를 무뎌지게 만들어, 또 다른 괴물을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개미지옥에 빠진 소희

아이들을 견고한 시스템에 가두는 회사

소희는 발버둥 친다. 팀장의 죽음, 새 팀장의 압박, 과중한 업무, 분노한 고객의 전화도 어떻게든 버티고 적응하려고 몹시 애쓴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소희에게 돌아온 건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지급되는 부당한 임금인 80만 원과 악착같이 매달려 일한 대가로 받은 인센티브는 퇴사하지 않고 3개월을 버티면 그 후에 지급되고 그마저도 퇴사하면 안 준다는 규정을 알게 된다.  노동하되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법에 적용받지 않은 사각지대이다.

 

이런 부당한 상황에서 고등학생인 소희는 대응할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술집에서 친구에게 대놓고 욕하던 남자들에게도 당당하게 맞설 만큼 당찬 소희였지만, 이 사회의 공고한 시스템 안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깊은 슬픔에 빠져들어 갈 뿐이다. 살기 위해 겨우 악 소리 한 번 질렀는데 회사는 시스템대로 3일 무급휴직으로 대응한다. 결국 소희는 절망하고 무너지고 만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춤을 혼자 추고 있는 친구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의 사정도 소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자 살기 바쁜 친구들. 소희는 함께 춤추던 태준에게 찾아간다. 하지만 태준도 비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소희는 조용히 발길을 돌린다.

태준 역의 강현오

취업률에 목매는 학교

마지막으로 울면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다. 하지만 담임은 그 자리가 얼마나 좋은 곳인 줄 아냐고, 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가 얼마나 힘을 썼는지, 학생이 실습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면 자신이나 학교에 얼마나 불이익이 있는지 아냐며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고 윽박지른다. 결국 모든 것을 소희 탓하며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는 아이로 몰아가며 공격하기까지 한다.

담임 역의 허정도

학교는 이미 교육기관이 아니라 인력파견업체가 된 지 오래다. 학교는 실적으로 평가하는 교육청을 탓한다. 지역 교육청은 평가를 통해 예산을 집행하는 교육부에, 교육부는 노동문제라 노동부에, 노동부는 학생문제라 다시 교육부에 책임을 떠넘긴다. 아무도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한다. 

자식에 대해 잘 모르는 부모

어려운 가정 형편을 아는 소희는 미안한 마음에 가냘픈 목소리로 "나 회사 그만둘까?" 물어보지만, 엄마는 모르는 채 한다. 그저 대부분 부모가 그렇듯 사회생활 처음 하면 누구나 힘든 거로 생각하고 잘 버텨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소희는 조금씩 무너져 가고 죽어가고 있었다. 

다음 소희 2부 '다음 소희는 없어야 돼'

소희의 자살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이 등장하면서 2부가 시작된다. 유진은 현장 경험도 적고 본부에서 좌천되어 온 인물이다. 그래서 관행적인 경찰 논리에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유진처럼 자신에게 오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치는 인물. 춤추는 연습실에서 한 번 만난 여고생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회사를 찾아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한다.

전반부가 소희의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유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삼자인 유진의 눈으로 이 자살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폭로하는 것이 영화의 목표이다. 

소희를 자살로 몰고 간 '왜'라는 질문

회사는 왜 실업계 고등학생을 실습생을 데려다 인센티브는커녕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성과표를 붙여놓고 사람을 혹사시키고, 결국 사람이 죽어도 나 몰라라 하게 하는가? 

실습생이라는 제도가 뭐기에 근로기준법을 어겨도 되고, 이런 회사에 학생을 보내놓고 학생이 자살할 때까지 학교는 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가?

회사도 학교도 하던 대로 했다. 규정대로 했다.
그래서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아무 죄도 없는 걸까?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한창나이의 발랄했던 고등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냥 소희라는 아이가 약해서 그런 걸까, 소희는 원래부터 그런 아이였던 걸까? 우리 사회는 흔히 약한 사람에게 냉정하다. 맞은 애가 문제가 있겠지, 성폭행당한 애가 문제가 있겠지, 자살한 애는 문제가 있겠지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 사건도 한 소녀의 탓으로 돌리면 개인의 문제로 끝난다. 원인은 진짜 소녀 한 개인의 탓인가?

죽은 소녀 앞에서 '매뉴얼대로 일상적으로 행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한나 아렌트가 아르히만을 보고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자 '무사유의 무서움'이 우리 사회에서 또다시 재현되는 걸 느꼈다.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인 아르히만도 그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한 관리자였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가 진짜 무죄인가? 그는 유죄이다.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르히만 처럼 '위에서 시킨 일이고, 하던 일이라 행했을 뿐이고, 그게 일상이었다고.' 그렇게 수행한 일들로 어떤 피해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상상하지 않았다고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도 똑같이 말한다.

우리는 "왜" 이걸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고, 생각하며 말해야 하고,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으로서 '다음 소희'를 만들지 않을 사회적 책무이다. 

 

출연진

연기 잘하는 신인 연기자 '김시은'의 발견

배두나

'브로커'에 이어 5번째 형사 역을 맡은 배두나는 억울한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며 다음 소희를 만들자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관료화된 경찰 조직 사회에서 위에서 찍어 누르는데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유진'은 감독이 만들어낸 판타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판타지 같은 노력하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만한 인물로 그려진다.  유진이라는 인물이 비록 판타지 같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그렇게 말해야 한다.

정주리 감독

노동을 싫어하는 시대 약자를 혐오하는 시대에 노동과 약자를 촘촘하면서 뜨겁게 이야기하는 영화. 그의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칸에 간 김시은 배우와 정주리 감독

손익분기점

순제작비 10억, 손익분기점은 30만이 들어야 하는 영화이다. 다음 소희는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주간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칸에 초청도 받은 작품이지만, 독립 저예산 영화가 30만을 넘기는 건 상업영화의 300만 보다 더 어려운 관객 수이다. 많은 사람이 '다음 소희'를 응원하고 기대했던 만큼 장기 상영, 역주행도 일어났지만, 손익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에서 30만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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