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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멀티버스로 간 양자경

by 씨네서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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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 시작되면서 가장 뜨거웠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년 10월에 개봉했다가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2023년 3월에 재개봉했다. 제95회 아카데미에서 최고 권위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녀주연상, 남녀조연상, 편집상 등 총 7개 부문을 수상하고,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양자경이 받으며 새롭게 주목받은 영화다. 

 

2022년 11월에 개봉했을 때, 너무나 정신이 혼란한 B급 패러디 저예산 영화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저급해 보이는 유머에 오글거린다는 분들도 있는데 도대체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한다.  

 

줄거리

미국에 이민와서 힘들게 빨래방을 운영하던 '에블린'(양자경)은 남편 '에드워드'(키 호이 콴)의 이혼 요구와 동성애자 딸 '조이'(스테파니 수)와의 말다툼에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몸은 쉴 틈 없이 바쁘고 머리는 짜증으로 터질 지경이다. 제목처럼 에블린은 모든 것을(everythig) 모든 곳에서(everywhere) 한 번에 모두(all at once) 해내야 하는 정신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에블린은 '멀티버스'라고 하는 다중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수천수만 개의 자신이 이 멀티 우주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멀티버스에서는 '버스 점프'(Verse Jump)라고 하는 기술을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들의 힘을 빌려와 악당 '조부 투파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미국 이민 1세인 에블린이 다중 우주를 넘나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겪는 현실적 고충과 세대 갈등을 SF 장르로 표현한 영화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외견상으로는 정신없이 혼란스럽고 빠른 영상을 전개하면서 그 속에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는 깊이 있게 끝까지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 쏟아내는 그 많은 이미지 속에서 꼭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가족 이야기 

서로서로 의지하고 사랑하지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두 모녀가 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그런 것처럼 에블린도 딸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살찌니까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고, 백인은 사귀지 말라고 하고, 딸이 선택한 레즈비언 여자친구를 부끄럽게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소개도 안 시킨다.  

 

딸 조이는 그런 엄마에 대해 불만이 굉장히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 자신이 원하는 걸 말리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엄마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 간다. "누구 닮아서 저런가?" "어디서 저런 애가 나왔나"라는 한탄의 말을 하게 된다. 이 상황을 SF적인 설정으로 바꾼 영화다. 이해할 수 없는 자식 안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조부 투파키'이다. 겉모습은 내 딸인데 실은 내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 안에 괴물이 있어서 저런 거라는 생각을 기발한 상상으로 펼친 영화다. 

 

2. 죽지 말고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줘!

두 번째로 이 영화는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멀티버스라고 하는 SF 장르를 통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우주 말고, 멀티버스라고 하는 수천, 수만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세계관이다.

 

그런데 왜 알파버스에 있는 웨이먼드와 조이가 수많은 에블린 중에 가장 안 풀린 에블린에게 찾아왔을까?

 

잘 나간다고 좋은 건가?

알파버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에블린은 특출난 재능을 가진 조부 투파키에게 서로 다른 우주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인 버스 점프(Verse Jump)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하지만 조부 투바키가 능력을 더 향상할 수 있도록 극한까지 밀어붙이다 결국, 제자인 조부 투파키는 최악의 악당으로 변해버렸고 세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파괴적 허무주의, 에브리씽 베이글

먼저, 이 영화는 현실에서 딸 조이이자 멀티버스 세상에서 최고의 악당인 조부 투바키를 이해해야 한다. 조부 투바키는 세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파괴하려는 허무주의에 빠진 빌런이다. 멀티버스로 모든 가능성이 열리고 나니까 오히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모든 걸 파괴하려고 한다. 

 

조부 투파키는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모두 다'하는 자아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만의 철학, 자기만의 욕망을 가지기 힘들어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MZ세대를 대변한다.

 

세상을 멸망시키고 조부 투바키 자신도 소멸시키는 도구로 거대한 검은 베이글이 나온다. 에브리씽 베이글, 다시 말해 모든 토핑이 올려져 있는 베이글이다. 동그랗고 중간에 구멍이 뚫린 빵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베이글이 상징하는 건 모든 것을 욕망하는 것은 아무 욕망도 없는 것과 같다.  MZ세대가 시니컬 해질 수 밖에 없는 미디어 환경을 묘사했다. 조부 투파키는 이 둥근 원으로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너의 가치를 계속 끌어올리라는 엄마 에블린의 잔소리와 허무주의가 만연한 인터넷 세상 사이에서 조이 세대는 일찌감치 희망이 깨져버렸다. 자기 창조를 위해 아등바등해 봤자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미 누군가가 다 했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도 인터넷에서 보면 다 가본 곳이다.

 

그래서 내가 애써 해 봤자 사실 별거 아니고 부질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버렸다. 기대와 현실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분노와 절망이 '조부 투바키'라는 파괴적 허무주의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낙관적 허무주의, 인형 눈알

에블린도 멀티 버스 속 자기 선택의 결과들을 모두 경험해 보니까 어떤 결정을 했건 인생의 아픔은 있고 의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려 한다.

 

그때 남편이 말한 나는 "다정함으로 싸운다"라는 말에 각성하고 이마에 인형 눈알(googly eye)을 붙이고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다. 이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이마에 열린다는 세 번째 눈(아즈나 차크라)을 상징한다. 

 

'에에올'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첫 번째 단계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 어떤 인생을 살아봐도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가고 별거 없구나라는 깨달음이 마지막이라면 조부 투파키처럼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인생이 별거 없구나라는 무(nothingness)를 깨닫는 순간을 진짜 삶의 의미를 찾는 시작점으로 삼는 게 낙관적 허무주의다.

 

에블린은 모든 게 의미 없고 부질없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이든지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에서 의미를 담아낸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읊조림은 

"그때 만일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인터넷 세상이 발달하면서 내가 선택할 뻔했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하지만 지금 내 현실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볼 기회가 너무 많아졌다. 내 삶을 인터넷 세상에서 보는 다른 사람의 멋진 삶과 비교할수록 내 현실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때 '이거 해서 뭐 해'라는 시니컬함과 허무주의가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고 세상의 중요한 걸 못 보게 된다. 

 

조부 투파키는 모든 잘못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고, 에블린도 딸처럼 자신이 안 풀린 것은 자기 밖의 것 특히 자기 남편 때문이라고 원망하던 사람이다. 남편인 웨이먼드는 자기 잘못은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야 에블린도 자신 안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세상에 대한 다정함'을 삶의 방식으로 회복하게 된다. 

 

내가 이룰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의 선택을 해서 현재를 살고 있지만, 내가 현재 느끼는 인연과 감정에 충실함으로써 파괴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진정한 허무주의자라면 태연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이 절망하지 않습니다." 

-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 박이문

 

3. 코미디영화

멀티버스 사이를 점프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신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 행동이 '에에올'의 코미디 포인트가 된다. 파리를 코로 들이마신다든가 엉덩이에 트로피를 낀다든가 립밤을 먹는다거나 종이에 손을 벤다는 비정상성을 극대화한 B급 유머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머이다. 

 

심각한 상황에 벌어지는 황당한 해프닝은 코미디 요소로 충분히 낄낄거리며 즐길 만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다. 필연적인 죽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전혀 필연적이지 않고 개연성이 전혀 없는 뜻밖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야말로 사소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오히려 평소에 하지 않는 의외의 행동이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밖의  해석들

긴 제목과 구성

이 영화는 3부로 나뉘어 있다. I. 에브리씽, II. 에브리웨어, III. 올 앳 원스이다. 이 세 부분의 시작은 모두 세무조사받으러 갈 책상 위에 쌓인 영수증 더미를 정리하는 에블린에서 시작한다. 

 

에블린은 멀티버스 속 수많은 자신을 만난 후 현재의 자신을 판단하고 정산한다. 수많은 영수증을 통해 나는 매번 수많은 선택을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현재의  나는 왜 이렇게 비참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를 따지는 장면처럼 보인다. 심지어 이렇게 어렵게 정리해 간 영수증을 보며 국세청 직원은 잘못된 비용처리라며 에블린을 범죄자 취급한다. 그건 마치 당신 인생에 왜 이런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를 따져 묻고 있는 것 같다. 

 

노래방 기계

국세청 직원은 노래방 기계 구매 영수증이 빨래방 운영 비용으로 처리된 걸 문제 삼는다. 에블린 입장에서는 코인 빨래방에서 일하지만, 노래방 기계로 가족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건 일을 위해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그 영수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즉 세상은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부분은 영수증 처리해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빨래방의 의미

빨래라는 건 세월의 때가 묻은 걸 세탁한다는 의미가 있다. 에블린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삶이 실패라고 생각하고 이 삶은 망했다, 너무 힘들다며 늘 인상을 쓰고 다니는 아줌마였다. 이런 힘든 삶의 찌든 때를 세탁해 보자는 의미로 선택한 직업 설정이다. 

 

빨래방에 두 명의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이 있다. 한 명은 코인 빨래방 기계에서 거스름돈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항의한다. 또 다른 한 명은 빨래가 분실되었다고 항의한다. 이 컴플레인은 에블린의 상황과 관계가 있다. 에블린이 자기 삶에 노력을 주입한 만큼 정당하게 받아야 될 대가(거스름돈)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와 에블린이 인생에서 얻고자 했던 걸 분실한 상황이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출연진

양자경

할리우드 진출 20년 만에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에에올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아시아 배우 최초라는 기록을 썼다. "어린아이들에게, 크게 꾸는 꿈은 실현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성 여러분, 여러분들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라는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전했다.

 

 키 호이 콴 

이 친숙한 얼굴은 1984년 오락영화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아나 존스' 1985년 '구니스' 속 아역배우 출신이다. 무술감독으로 살다 20년 만에 배우로 복귀한 작품이다.

아역배우였던 키 호이 콴 '인디아나 존스, 1985'

  

 

감독 다니엘스

감독 다니엘스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둘은 친구 사이다. 2016년에 '스위스 아미 맨'이라는 병맛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88년생 30대 젊은 감독이다. 이들의 영화는 병맛 유머 뒤에 의외로 상당한 감동 포인트를 주는 게 주특기이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 '요즘 세상은 영화에 관한 관심이 빠르게 변하지만, 영화를 통한 스토리는 우리의 삶을 계속 변화시킬 것'이라는 감동적인 수상 소감이 주목받았다.

 

인터넷 시대의 허무주의를 '다정함'이라는 인간적인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는 다니엘스 감독의 영화적 희망이 앞으로 어떻게 뻗어나갈지 기대된다. 

 

제작사 A24

독립영화계의 다크호스 A24가 배급했다. 문라이트, 킬링 디어, 미드소마, 미나리,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같은 다양성 영화를 배출한 영화사이다. 독창적이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내놓았던 A24가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단 10개 개봉관에서 제한 상영을 시작해 지금은 A24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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