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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 만우절 어린이날 볼 영화

by 씨네서 202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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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하면 거짓말, 거짓말하면 피노키오.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면 네 코가 길어질 거야"라는 말로 거짓말을 못 하게 하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 나오는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고, 9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디즈니와 픽사 계열이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이자, <윌레스와 그로밋> 이후 17년 만에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가 수상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정지하고 있는 인형과 같은 피사체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동작이 이어지게 만드는 영상을 말한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손끝으로 빚어낸 시네마>를 함께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수많은 인형과 세트를 하나하나 움직여서 촬영하는 제작진의 열정이 느껴진다. 영화 준비기간이 무려 15년, 천일의 촬영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15년을 30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새삼 시네마라는 게 하나의 예술을 넘어 협업을 토대로 한 노동집약적인 예술 산업임을 깨닫게 한다.

 

줄거리

20세기 초, 이탈리아 소도시의 교외에 사는 목수 제페토에겐 10살 난 늦둥이 아들 '카를로'가 있다. 나이에 비해 명석하고 밝은 아이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아들 카를로가 급작스레 사망한다. 슬픔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던 제페토는 술김에 아들을 닮은 나무 인형을 만든다. 제페토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푸른 요정이 나타나 나무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준다. 제페토와 마을 사람들은 피노키오의 존재에 대해 놀라고 피노키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

피노키오의 첫 시작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를로 콜로디'가 1881년 이탈리아 최초의 어린이 잡지에 《피노키오의 모험, 꼭두각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년에 걸쳐 서른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연재한다.

 

이걸 엮어 1883년에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이후 애니메이터였던 월트 디즈니가 '자신이 만든 가장 멋진 작품'이라고 평한 애니메이션 <피노키오>가 1940년에 만들어진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과 실사영화로 수없이 만들어왔다. 델 토로 감독이 이미 많은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졌던 피노키오를 되살려낸 이유가 무엇일까. 델 토로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디즈니 버전과 델 토로 버전의 차이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건 어려운 작업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재창작된 작품만의 특별함이 필요하다. 델 토로 감독의 특별함은 늘 그래왔듯 영화에 20세기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가져온다. 원전의 주제인 아들의 죽음, 아버지의 비애, 가족의 해체와 인간성에의 의문은 무솔리니 파시즘이 도래했던 시대상 위에 더 폭넓은 의미를 부여받고 감정은 극대화된다. 델 토로 감독은 '피노키오'의 모험 활극보다 피노키오를 만들고 영향을 준 '어른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동화 같은 원작 이야기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잘 엮어서 매우 참신한 델 토로 버전의 피노키오를 탄생시켰다. 형식적으로는 스톱 모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작품 자체의 매력을 높이고,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기한 모험만 가득한 동화 같은 세상과 세계대전이라는 어른들의 음울한 세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동시에 그려냈다. 영화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피노키오의 모험에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어른들도 봐야 할 어른 성장 동화가 만들어졌다. 전체 관람가 등급이지만 한 5분 정도만 봐도 델 토로의 인장이 박혀있는 영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떠올리면 어른 말씀 잘 듣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교훈이 떠오른다. 원작 피노키오는 이런 교훈을 넘어 19세기말 이탈리아 당대 사회를 향한 풍자와 심오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가혹한 시련을 숱하게 겪으며 더디게 철들어 가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경고와 짙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1940년에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피노키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되었지만, 풍부한 상징과 통렬한 풍자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어 왔다. 델 토로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가져와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이전 작품들이 피노키오의 모험 활극이라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피노키오를 둘러싼 어른들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에서 원작을 살린 델 토로 특유의 기괴함과 놀라운 상상력은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어른 캐릭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 명의 공통점은 피노키오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자기 생각에 맞게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피노키오, 너는 내가 조종하는 대로 해야 해"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사별한 아들 카를로와 닮은 꼴로 만들려고 한다. 파시스트인 포테스타 시장은 피노키오가 무한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전쟁에 이용하려 한다. 피노키오와 자기 아들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파시스트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시킨다. 서커스 단장인 볼페 백작은 가장 노골적으로 "너는 내가 조종하는 대로 해야 해"라며 피노키오를 줄에 매달아 꼭두각시로 조정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어른이다. 

 

"피노키오, 거짓말을 해! 코가 길어지게"

델 토로의 피노키오에서는 거짓말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상징과도 같은 행동이 완전히 다르게 사용된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은 아이를 선한 존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선한 거짓말이다. 제페토는 평소에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니까 안 된다며 따끔하게 거짓말을 못 하게 했지만, 괴물로부터 탈출하려고 할 때는 피노키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행동도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아버지 제페토는 고백한다.

“이젠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아라. 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길!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

피노키오는 소나무(파인 트리)로 만들어져 죽음이 없는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다. 델 토로는 무한한 삶이 마냥 좋은 것인가를 묻고, 소나무는 죽었지만 소나무가 남긴 솔방울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노키오는 약간의 대기시간만 있을 뿐 무한반복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무한한 생명을 포기하고 삶의 유한함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 제페토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유한한 삶 속에서 피노키오가 가진 선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영화 시작과 끝에 클로즈업된 솔방울을 통해 들려준다.

 

생명이 끝난 피노키오를 다시 살린 것은 디즈니 버전처럼 피노키오의 선함에 감복한 푸른 요정이 아니라 세바스티안이 푸른 요정과의 거래를 통해 얻은 '한 가지 소원 들어주기'를 사용해 부활이 이루어진다. 피노키오와 유사한 이 행동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판의 미로>(2006)로 아카데미 각본상, 촬영상을 받았고, 제9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셰이프 오브 워터>(2018)의 감독. 데뷔작은 1993년 <크로노스>로 칸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은 멕시코 감독이다. 이후 <미믹>(1999) 각본과 연출, <악마의 등뼈>(2001) <블레이드 2>(2002) <헬보이>(2004) 등 다크 판타지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와 함께 삼부작이라고 했다.

 

목소리 연기

애니메이션 하면 목소리 연기를 누가 했을까 궁금한데, 초호화 캐스팅이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이 대사 한마디 없이 사람 말투를 어설프게 따라 하긴 하지만, 대부분 끽끽거리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내는 원숭이 스파타투라 역을 맡았다.

 

케이트 블란쳇은 델 토로와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감독 차기작의 어떤 역이라도 맡고 싶다고 했는데 남은 역이 원숭이 스파타투라 밖에 없다고 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말하는 귀뚜라미 세바스티안에는 '이완 맥그리거', 푸른 요정과 죽음의 요정에는 '틸타 스윈튼' 등 연기파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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