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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이선균의 마지막 영화, 역사 속 법정 드라마로 만난 <행복의 나라>

by 씨네서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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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촬영을 마치고, 2024년 8월 14일에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극장 상영작이다. 최근 개봉한 그의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는 전혀 다른 시대극으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

<행복의 나라>는 1979년의 한국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쏜 10.26 사건과, 전두환이 권력을 잡게 되는 12.12 군사반란이 연이어 발생한 시기였다. 이 두 사건은 이미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같은 영화에서 다뤄졌지만, <행복의 나라>는 10.26과 12.12 사이에 벌어진 정치 재판에 집중한다. 단 16일 만에 졸속으로 진행된 이 최악의 재판은 김재규의 명령에 따라 경호원들을 사살했던 군인, 박흥주 육군 대령의 이야기이다.

 

캐스팅과 연기

이 영화에서는 이선균, 조정석, 유재명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선균은 박흥주 대령, 영화에서는 박태주 대령으로 등장하고, 조정석은 그의 변호사였던 태윤기 변호사, 영화에서는 정인후 변호사 역을 맡았다. 유재명은 전두환을 연상시키는 전상두라는 인물로 등장해 재판을 조종하는 합수부장의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줄거리와 주요 대사

 

"이럴 거면 재판은 왜 진행하는 겁니까" - 정인후 변호사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 발생. 영화 <행복의 나라>는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이자 과묵한 FM 군인이었던 '박태주'(이선균) 대령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미국 최악의 정치재판에 뛰어든 법정 개싸움의 일인자 '정인후'(조정석)를 비추며 시작된다.

 

  "나 하나 살자고 부장님을 팔아넘기라고?" - 박태주 대령

박태주 대령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소임을 완수했으나, 재판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상관을 팔아넘기는 진술을 하지 않는다. 정인후 변호사는 이러한 박 대령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놈은 죽어" - 전상두 합수단장

재판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인물은 전상두로, 그는 "내가 결정해! 죄가 있고 없고는"이라는 대사로 권력의 절대성을 과시한다. 유재명 배우의 연기는 이러한 전상두의 위험한 야망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비주얼과 연기 톤, 발성, 표정 모두에서 위험한 야망을 가진 인물의 내면을 잘 드러낸다. 

 

법정 드라마로 풀어낸 10.26 사건

10.26과 12.12에 관한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이를 법정 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은 <행복의 나라>가 처음이다.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10.26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와 그 여파로 일어난 12.12를 다룬 <서울의 봄> 같은 영화가 10.26의 재판 과정을 다루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영화는 10.26과 12.12 사이의 사건을 다루며, 두 사건을 이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고, <서울의 봄>의 프리퀄(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영화)이라고 할 수도 있어 모두 관람한 후 영화를 본다면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다.

 

 

추창민 감독의 의도와 시대상

<행복의 나라>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다.  깔끔한 구성과 뚜렷한 스토리텔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 <마파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작품에서도 그러한 면모가 드러났으며, 특히 역사와 서사를 풀어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전작인 <7년의 밤>에서는 일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번 <행복의 나라>에서는 완성도 높은 법정 드라마의 서사를 다시 한번 선보인다.

 

 

감독이 왜 이 시대를 배경으로 법정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감독은 "박흥주를 제대로 조명한 영화가 없었다"라고 말하면서도, 개인의 서사보다는 '그 시대의 야만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는 것보다, 그 시대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혹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 있다. 인물의 감정선과 시대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추창민 감독의 연출력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며, 관객들을 묵직한 법정 드라마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일 때 발생하는 혼란이다. <행복의 나라> 역시 대체역사물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영화 속 몇몇 장면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정인후 변호사가 전장군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장면이나 참모총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에피소드는 사실과 다르며, 이러한 허구적 요소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고 나서 실제 이야기를 찾아보며 더 깊이 이해하려는 관객들이 많다. <행복의 나라>는 이러한 관객들에게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를 구분하는 재미를 제공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역사 왜곡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선균의 마지막 작품

이번 작품이 극장에서 만나게 되는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라, 그의 연기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야만의 시대를 그린 것만이 아니라, 역사가 되풀이되는 비극적인 면모를 반추하게 만든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 마녀사냥과 같은 비극들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배우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소"

 

올 여름,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개봉했지만, <행복의 나라>는 그중에서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 된 이 작품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자행된 졸속 행정과 불법 행위가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암울안 일면을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그가 남긴 강렬한 마지막 인상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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