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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탈주>: 액션과 철학의 절묘한 조화

by 씨네서 202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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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지난 2024년 여름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이종필 감독의 영화 <탈주>는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 영화는 단순한 추격 액션을 넘어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의미없는 삶을 두려워하라
- 인류 최초 남극점 도달 탐험가 '아문센'의 글에서

 

 

규남과 현상: 대립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의미

영화 <탈주>는 북한 군인 규남(이제훈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규남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주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하급 병사의 방해로 어긋나고, 결국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 분)과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두 캐릭터 간의 대립에서 비롯된 긴장감이다.

 

추격자 현상 -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안정형 인물

 

규남은 철책 너머로 자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고, 현상은 그런 그를 쫓으며 자신의 안정된 삶을 지키려 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삶과 자유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현상은 겉으로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금수저이지만, 그도 체제의 벽에 갇혀 자신의 꿈을 포기한 인물이다. 반면, 규남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탈주하는 자가 아니라 쫓는 자(의 심연이 더 깊고)가 더 괴로운 영화다. 나처럼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라고 아무리 강요해도 듣지 않고 탈주하는 규남을 보는 현상의 속내는 절망과 회환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간결함 속에서 전달되는 강렬한 메시지

 "내 갈 길 내가 정했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실패하러 간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감독이 추격 액션을 위해 감정적 요소나 불필요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오로지 긴장감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는 더욱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규남이 말하는 "내 갈 길 내가 정했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실패하러 간다."는 대사는 그의 결연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이 영화가 단순한 자유가 아닌,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수색, 은신, 도주에 능한 규남 - 주인진 운명에서 탈주하는 공격형 인물

 

그래서 영화는 오프닝 징면부터 초지대를 종횡무진 달리고 또 달린다. 규남은 직진의 캐릭터로 스크린 좌우로, 전면과 후면으로, 위 아래로 탈주하도록 연출된 동적인 액션을 펼친다. 이에 반해 현상은 내면을 알 수 없는 복잡함을 가진 태릭터로 정적인 몰이를 하는 방식의 액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켜 나간다.  

 

음악과 캐릭터의 내면: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또한, 영화 속에서 현상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5번 G단조는 그의 복잡한 내면을 상징한다. 피아노를 전공했을 것으로 유추되는 현상은 체제 속에서 좌절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현상의 내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삶에 대한 성찰: 실패를 감수한 선택

<탈주>는 단순한 추격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규남과 현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삶이 의미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규남이 실패를 감수하고 달려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끊임없는 갈망과 도전을 상징한다.

결국, <탈주>는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안하는 작품이다. 이종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하며,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번뇌와 갈등을 드러낸다. 실패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해 볼 수 있는 삶을 위해 달려야 하는 건 아닌지.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격렬한 탈주를 꿈꿔야 하는 건 아닌지.

 

이종필 감독

<전국노래자랑>(2013)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만들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중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까지 받았다. 이종필 감독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구제하는 방식을 깨우쳐가는 인물들을 주고 그려왔다. <전국노래자랑>의 봉남(김인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세명의 주인공, 또 <박하경 여행기>(2023)의 박하경(이나영)까지. <탈주> 역시 그렇다. 자신의 삶, 자신의 내일을 선택하기 위해 탈주를 감행하는 규남이 있다. <탈주>가 분단영화가 아니라 잘 만든 추격영화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종필 감독과 구교환(리현상 역) 배우

 

이종필감독은 감독이자 영화 배우이기도 하다. <아저씨>(2010)에서는 노형사 역을 <푸른 소금>(2011)에서도 단역 배우로, 단편영화 <백년해로외전>(2009)에서는 주인공 현극을 맡아 열연을 펼쳐 미쟁센 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간절함을 담은 영화:  <탈주>의 영감과 의도

영화 <탈주>에서 주인공 규남은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탈주를 시도한다. 하지만 실제로 DMZ를 통한 탈북은 극히 드문 사례러고 한다. DMZ는 철조망과 세계 최대 규모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매우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실제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DMZ를 넘은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탈북인 강하늘 씨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그는 2012년에 DMZ를 거쳐 남하한 경험이 있다. <탈주>의 두 배우에게 리얼한 북한 말투를 가르친 사람이다.

 

 

영화 <탈주>는 단순히 탈북을 시도하는 북한 군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이종필 감독은 한 해외 뉴스에서 아프리카 청년이 유럽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비행기 바퀴에 몸을 묶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 청년은 수천 미터 상공에서 바퀴에 묶여 영하의 추위와 산소 부족을 견뎌내며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다. 이 사건을 접한 감독은 ‘간절함’이라는 주제를 떠올리며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북한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보다는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라는 관점에서 봐주길 바랐다고 한다. <탈주>는 그러한 간절함과 자유를 향한 열망을 그린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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