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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아이 캔 스피크>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꼭 봐야 하는 영화

by 씨네서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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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요 및 제작 배경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꼭 봐야 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의 2017년 개봉작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모았겠지만, 다시 봐도 좋은 영화다.

 

이 영화는 영화사 '시선'의 기획으로 출발해 4년여간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 프로젝트이다. 75:1의 경쟁률을 뚫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의 당선작이기도 하다.

 

영화 중반 넘어서까지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나 암시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초반엔 그냥 코미디 영화 같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재미있는데, 그래서 중후반부의 임팩트가 더 크다.

 

영화의 구성과 김현석 감독의 장기

김현석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인 <스카우트>를 연상케 한다. 주인공 '호창'역을 맡은 임창정이 그 시절 큰 화제를 모았던 광주일고 3학년 선동렬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가는데, 초반엔 코미디 영화인가 싶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상과 역사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 전반부의 코믹함과 후반부의 진지함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 또 외부에 있던 관찰자가 내부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변화한다는 설정도 두 영화가 맞닿아 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외부에 있던 관찰자 박재민(이제훈)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의미

요즘 한국영화에서 배우의 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나문희 배우는 이 영화로 대종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옥분' 역의 나문희 배우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전에 영화의 가치와 의미에 공감하며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 당시 일흔일곱이었다. 여성배우들이 연기할만한 역할이 없다고 하는데, 소재나 주제의 의미를 떠나서라도 편향된 한국영화 시장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다. 

 

나문희 배우가 아닌 옥분은 상상이 안되는데, 옥분은 '도깨비 할매'로 불리며 구청에 무려 8천 건의 민원을 넣는 민원왕이다.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느니 주변 시장 상인들도 좀 껄끄러워한다. 구청직원들은 할머니가 구청에 들어서는 순간 피하기 바쁘다. 그런데 이 옥분 할머니에게 적수가 나타났으니, 이제훈 배우가 연기한 9급 공무원 박민재 주임이다.

 

처음엔 원리원칙주의 민재의 승인가 했는데 웬걸, 옥분의 노련함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의외로 옥분 할머니에게는 남다른 사심이 있었다. 바로 영어 공부에 완전 진심이었다. 민재가 영어를 잘한다는 걸 알고는 자꾸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사실 민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백과사전, 위도, 경도, 생태학 등 어려운 단어만 일부러 골라서 외워오게 한다. 이제훈 배우는 이런 역할에 찰떡이다. 원리원칙주의고, 남이 뭐라고 하건 별 신경 쓰지 않는 고집이 보이는 얼굴에, 알고 보면 정의로운.

 

이제훈 배우가 2010년 <파수꾼>으로 영화인들과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을 때부터 과연 이 배우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정말 궁금했었다. 이후 <건축학 개론>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박열> 그리고 <탈주>의 규남까지, 탄탄한 필모를 쌓아가고 있다. 이제훈 배우는 이 영화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그가 보여주는 원리원칙주의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아이 캔 스피크> OST

이 영화에서는 노래로 만든 아재 개그도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옥분 : 생강이 어디서 나는지 알어?

민재 : 밭에서 나는 거 아닌가?

옥분 : 틀렸어. 오솔길

......

하면서 나문희 배우가 '생각(강) 난다 그 오솔길~'로 시작되는 노래  '꽃반지 끼고'가 삽입곡으로 나온다. 

 

민재 : 서면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서면'이라는 노래도 썰렁하지만 추억 돋게 흘러나온다.

 

대중을 울리려면 먼저 웃겨서 무장해제 시키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걸 일상 속에서 용해시켜 내는 게  대중영화의 흥행공식이다. 물론 이 영화는 진부할 수 있는 공식을 따르지만,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매력이다.

 

구청에서의 씬들은 전형적인 코믹 요소로 배치되어 있지만 과하지 않고, 옥분의 수선집이 있는 시장 사람들과의 풍경도 휴머니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역시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효과를 준다. 또한, 아재 개그도 잘 녹여냈다.

 

기림일: 용기와 연대의 이야기

영화 제목이 <아이 캔 스피크>인데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옥분 할머니는 뭘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까?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 121)이 통과되었던 2007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용기 있게 전 세계 앞에서 증언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상을 세상에 알린 할머니들의 용기를 기리는 '기림의 날'이기도 하다. 1991년 8월 14일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민간에서 기념해 오다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옥분 할머니가 내내 가슴속에만 담아뒀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여전히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일침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도 분명 있다.

 

옥분이 뒤늦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에 엄마의 산소를 찾아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하고...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 수 있겠어."라고 한탄하는 장면이었는데, 작년 기림의 날 행사장 입구에도 아직까지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입에 담기도 힘든 피켓이 놓여 있었던 걸 기억한다. 우린 과연 그분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아이 엠 소리, 이 대사가 정말 많이 나온다. 영화를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저지른 잘못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동안 몰라서,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한, 동서양을 막론한 공감의 감정이 이 '미안하다'이다.

 


이 영화를 '위안부 문제를 성공적으로 측면 돌파한 대중영화'라고 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측면으로만 평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혐오와 몰염치의 시대에 지금 필요한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

 

20여 년간 구청에 8천 건의 민원을 넣은 옥분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를 미워하던 동네 사람들이 미안해한다. 민재는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한다. 그리고 시장 상인들은 옥분에게 한약이며 내복이며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전한다.

 

옥분은 우리가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고, 이런 장면들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측면으로 좀 더 이 영화의 의미를 크게 확장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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