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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그랑블루> 깊은 바다 속 사랑과 경쟁, 자연의 서사

by 씨네서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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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사이에서 오랫동안 명작으로 꼽혀온 1980년대 영화들이 4K 화질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관객을 찾고 있다. 그중에서 여름휴가를 못 간 분들을 위해 '스크린 바캉스'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화로 <그랑블루>를 추천한다.

 

1988년 작품인데, 2013년에 이어 2024년 7월 17일에 다시 한 번 재개봉을 했다. 제41회 칸국제영화제(1988) 개막작이었고, 프랑스에서 907만 관객이 관람하며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당시엔 극장 하나에 영화 한 편만 상영하던 단관극장 시절의 기록이니까 더 대단한 기록이다.

 

무엇보다 영화 포스터가 유명하다. 망망대해에 돌고래와 사람이 있는 <그랑블루> 포스터는 1990년대 대히트였다. <흐르는 강물처럼> <쇼생크 탈출> <세 가지 색> 블루, 레드, 화이트 연작 중 블루 등과 함께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포스터는 단연 <그랑블루>였다.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포스터를 보면 "아, 이 영화!"할 분들 많을 것 같다. 당시 수많은 돌고래가 추가된 포스터 합성 버전도 유명했다. 상단에 "N'y allez pas! Ca dure trois heures! (니 알레 파! 세듀토와즈)"라고 쓰여 있는데, 번역하면 "보지 마세요! 세 시간이나 상영합니다"라는 뜻이다.

 

상영시간이 137분인데, 영화를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프랑스에서 개봉했던 원작은 132분. 이번에 재개봉하는 영화는 이 오리지널을 바탕으로 5분 정도가 더 길어졌다. 미국 개봉판은 118분, 감독판 168분,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에 개봉할 당시 가장 짧은 110분 버전이었다.

 

길게는 168분에서 짧게는 110분까지. 같은 영화인데도 느낌이 꽤 달라진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감독이 아닌 수입업자가 가위질을 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함부로 잘라서 도무지 내용의 흐름조차 따라가기 힘들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에 봤던 분들에게는 다시 보길 권한다.

줄거리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은 푸른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다이버인 자크와 엔조의 우정과 경쟁과 자크와 조안나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사유로까지 관객을 이끌어간다.

 

자크가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으면서 바닷가 마을을 떠나 돌고래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고 사는 듯 보인다. 반면 어릴 적 바닷가마을에서 자크와 함께 컸던 엔조는 현재 프리다이빙 챔피언이 되어 있다. 어느 날 훌쩍 떠난 자크를 수소문해서 세계 잠수대회에 초청한다. 이렇게 본격적인 이야기(누가 바다를 더 사랑하는지, 누가 더 바다와 하나인지...)가 시작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 영화는 특히 스쿠버다이버들, 프리다이버들에게는 전설적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프리다이버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숨을 참으며 다이빙하는 것을 말한다.

1983년 자크 마욜이란 프리다이버가 56세에 산소 없이 수심 105m에 도달한 후 은퇴하고, 5년 후 57세의 엔조 마이오카가 산소 없이 수심 101m에 도달한 후 프리다이버 세계를 떠난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이런 선의의 경쟁구도를 제외하곤 영화 나머지 부분은 모두 픽션이다.

 

여름의 남유럽 바다가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꿈을 이루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그랑블루.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바다는 참 여러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깊은 바다는 더구나 우리가 잘 볼 수 없으니까,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 있다. 이런 깊은 바다를 닮은 자크는 심해 저 어디에선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크를 사랑하는 조안나에게 엔조가 "그는 평범하지 않아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라고 말한다. 자크는 바다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고 경쟁도 하고 사랑도 하지만 결국 영원한 평화를 찾는 구도자처럼, 마음의 절대 평온을 찾아 떠나는 수도자처럼 보인다.

 

장 마크 바와 장 르노 그리고 뤽 베송

영화의 결말을 포함해서 현대인들의 눈엔 너무도 극단적인 낭만주의자처럼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현실의 꽉짜인 틀에 갇혀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극단적인 낭만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인 자크를 '장 마크 바'가 연기했다. 눈이 깊고 순수해보이는 배우다. 자크와 달리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이지만, 바다에 대한 애정만큼은 자크 못지않은 엔조는 우리가 잘 아는 레옹, '장 르노'가 연기했다.

 

이 영화 이후 1994년 <레옹>으로 함께 했던 뤽 베송 감독은 1988년 <그랑블루>를 시작으로 <니키타> <레옹> <제5원소> 등 명작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랑블루에선 수중씬을 직접 찍기도 했다. 부모님이 스쿠버다이빙 강사였고, 감독도 다이버 자격증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 아모르고스 섬 일대와 버진 아일랜드 등 실제 바다에서 수중촬영을 진행했는데, 감독이 수중에서 카메라를 다뤘다. 이렇게 촬영한 푸른바다를 영화 상영 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다.

 

바다 그 자체를 느끼게 하는 영화 

자크는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명상을 한다. 고도의 명상상태. 의식이 고양된 상태에서 바다로 향하는 과정이 슬로 모션으로, 약간 몽환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런 의식의 상태로 자크가 바다로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의식이 고양된 상태에서는 소음이 잠잠해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하는데, 이게 자크가 깊은 바다에서 느꼈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유나 해방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이유도 바다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의 심연.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엔조가 떠나고 자크가 보게 되는 침대 가득 물이 차오르는 환영과 마지막 씬은 이 영화를 예술 그 자체로 느끼게 한다. 이 엔딩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저런 엔딩을...' 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사랑이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하고, 인간이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 여운이 남는 엔딩을 바다의 심연처럼 간직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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