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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교육 영화 '디태치먼트' 어두운 학교이야기

by 씨네서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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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태치먼트>는 무너져버린 미국 공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현재 교사와 학생,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건지 다시 한번 묻고 있는 영화이다. 무너져버린 교육에 대한 전망 없는 현실, 아이들에게 바른 미래를 제시할 수 없는 현실은 여기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줄거리

과거의 힘든 기억으로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 살고 있는 헨리(에이드리언 브로디)는 고전문학 교사이다. 이번에 한 달간 학생을 가르치게 될 학교는 유난히 문제아가 많은 뉴욕 교외에 있는 고등학교이다. 이곳은 학교도 학생도 교사도 서로를 포기한 암담한 상황이 반복되고, 교육감도 학교 존폐여부를 상의하러 올만큼 문제가 많은 학교이다.

 

헨리가 맡은 반에도 문제가 많지만, 그는 학생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무관심하게 거리를 두면서 교사 생활을 하려고 한다.  학생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던 헨리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사미 게일), 학급의 외톨이 메레디스(베티 케이)와 만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학교를 배경으로 냉담한 단절과 고독의 세태를 담은 영화

스승의 날 추천할 만한 영화로 이전에 봐오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면 굉장히 충격에 휩싸일 거다.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자유로운 교사와 그를 따르는 아이들과 진학 실적에 목매는 권위적 학교 구도로 갈등을 전개하는 영화나 사명감 넘치는 스승이 문제아들을 감화시키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 <굿 윌 헌팅> 같은 교실 드라마는 모두 이상적인 교육관을 보여준다.

 

교사라는 직업을 넘어 현대인의 고달픈 현실을 위로해 주는 영화

학교를 배경으로 교사와 학생을 그리는 많은 영화들은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을 해소 과정에서 이상적인 감동을 전달하는 영화가 많았다. 하지만 디태치먼트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의 모습을 보다 현실적으로 조명하며 이전에 스승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감성을 전달한다.

 

흔들리는 교권과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영화 제목대로 무심함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그들 사이의 벽, 소통의 부재, 마음의 거리를 과장하지도 미화시키지도 않고 날 것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사회에서 고립되어 고독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학교 내 폭력, 사제 간의 갈등, 탈선, 자살 등 학교가 숨긴 교사와 학생, 학부모까지 어두운 단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기간제 교사 헨리를 통해 현재 교육 현실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

탈선에 빠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고민에 빠진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 마샤 게이 하든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교장으로, 미녀 삼총사의 루시 리우가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고통받는 상담교사 닥터 파커로 나온다. 교장, 상담교사, 임시교사, 은퇴를 앞둔 노년의 교사 등 각자의 위치에서 교사들이 겪을 수 있는 각기 다른 문제들과 고뇌를 드러낸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해요.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것도요.
전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기간제 교사인 헨리이다.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연기파 배우이자 <디태치먼트>에서는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애드리언 브로디가 헨리 역으로 나와 공허한 눈빛과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교사의 태도 변화

학교를 다룬 영화에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변화는 교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교육에 거는 기대치에 있다. <디태치먼트>의 고전문학 임시교사 헨리는 이전 세대에게 익숙한 스크린 속 선생님들과 마음가짐이 다르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트라우마를 지닌 불완전한 어른이자 교사인 헨리는 교육자의 자부심과 열의를 멀리한다.

디태치먼트(detchment)는 첫 번째 관련(involvement)의 반대말로
'무심함, 거리를 둔다'라는 뜻이다.

교사로서 헨리의 소극적인 태도는 본인의 직업에 환멸을 느껴 책임을 방기한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사 일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 끝에 내린 현실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지려 하고 모두에게 손을 뻗으려 했다가는 아이들의 반항과 모욕에 일일이 상처받아서는 절대 교사 생활을 오래 계속할 수 없다고 헨리는 판단한다.

보람과 긍지의 부재, 영구적으로 반복될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굳이 교직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들 곁에 오래 머무르기 위해 아이들에게서 떨어진 자리에 머문다. 

 

헨리에게 깊이 의지하는 두 아이가 그의 여력을 넘어서는 보살핌을 요구하자 헨리는 못 지킬 약속을 하는 대신 아이들을 밀어내고 사회보장기관의 손에 넘긴다. 한번 사명감에 타올랐다가 그곳을 아예 폐쇄하기보다는 협소하나마 마음속 그 장소가 계속 열려 있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애착 관계에 실패한 아이들

디태치먼트(detchment)는 두 번째 애착(attachment)의 반대말로 
'분리, 떼어내다'라는 뜻이다.

어른이자 교사인 헨리는 7살 때 엄마의 죽음으로 원만한 애착 관계에서 분리되지 못하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교사의 정신적 외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이전에 이상적인 교사상으로서의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굉장히 복잡다단하지만, 입체적인 교사 캐릭터가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애착 형성은 아이의 욕구에 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형성된다. 아이 돌보는 일이나 아이의 욕구에 부모가 관여하지 않는다면 애착 형성이 어려워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분리 불안 등 심리적인 문제를 발생한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아무나 부모가 될 순 없죠.

 

학교에서 개최한 학부모의 날에 참여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메레디스의 부모는 학교에서도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지만,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늘 부모의 무시하는 말과 잔소리를 듣는다. 내가 널 키우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 줄 아냐고, 그런데 넌 그런 어두운 그림이나 그리냐고.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아이들은 꿈도 미래도 없이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공격한다.

 

그러다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 실패한 메레디스도 거리도 떠돌던 에리카도 헨리가 내민 작은 호의에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자신을 유일하게 들여다 있는 그대로 대해주고 유일하게 말을 들어 준 어른은 헨리밖에 없었다.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에도 문제가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부모가 무관심으로 분리된 관계를 치유하지 않으면 교육 문제는 해결이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교육의 붕괴, 사회 문제를 매우 독창적으로 시각화하는 감독

토니 케이 감독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인종주의, <레이크 오브 파이어>에서 낙태 문제, <블랙 워터 트랜짓>에서 불법 총기 수집, <디태치먼트>에서 교육과 가족 문제를 이야기한다. 삐걱거리는 교육 시스템이 사람들을 우울의 나락으로 내모는 현실을 영화는 드라마틱하고 화려하게 보여준다. 

 

토니 케이는 <아메라칸 히스토리 X>(1998)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주인공을 통해 인종 차별 문제를 그려내며 사회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영화에 드러냈던 감독으로 이번에는 교사의 눈으로 학교와 학생, 그리고 교사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장르에 순응하지 않고 스튜디오와 타협하지 않는 감독

MTV 뮤직비디오와 광고에서 보여준 비상한 비주얼 감각으로 주목받았지만,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작업하면서 스튜디오와 벌인 편집권 분쟁으로 어두운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한 인터뷰에서 "내가 영화를 거울삼아 당대 미국인들이 숨기고 싶은 모습을 비추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투자자들과 프로듀서들은 자신과의 작업을 기피한다고 토로했다.

 

그 일로 할리우드에서 추방당하다시피 한 세월을 지나 지금은 국가적인 개념이 무너진 초세계화된 공간에서  4~5개국의 다국적 프로젝트를 동시에 작업하며 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2021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과 마스터클래스에 초청되었다. 

 

파격적인 영상

강렬한 메시지만큼 독특한 영상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실제 교사들의 인터뷰 화면이 다큐멘터리처럼 삽입되거나,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하고, 슈퍼 8mm 카메리로 촬영한 과거 플래시백 화면은 헨리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힘을 더한다. 

 

헨리의 인터뷰를 영화 중간중간 배치해 교사들의 고충과 고민을 담담하게 전달하고, 정서적으로 강한 분노나 자극을 표현할 때는 칠판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학교 칠판 위에 분필로 그려지는 듯한 애니메이션이 심리적인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서울청소년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파격적인 영상과 성적 묘사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돌봐야 할 의미가 있어요.
이 직업의 가장 나쁜 점은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지금 고맙다고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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